영화

영화 반교: 디텐션 리뷰 - 체제의 억압을 공포적인 해석으로

배배하마 2020. 10. 14. 12:00
반응형

 

 

 

개인적인 견해가 담긴 리뷰입니다
스포가 가득하고요

 

주위 모두를 살인마로 만드는 국가

 

 

일단 게임이 원작인 만큼 게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1960년대 후반의 대만의 공산주의의 암울함을

꽤나 공포스럽고 메세지도 잘 풀어낸 수작이니까. 얼마나 파급력이 있었으면 중국에선 판매가 금지된 걸로 알고 있다.

 

영화로 돌아가면 여주 팡레이신은 학교 주위를 맴돌며 나갈 곳을 찾는다. 그중에는 독서회를 감싸줬다고 믿는 경비, 본인을 좋아한 웨이충팅, 가끔 독서회 애들과 장밍후이 선생님도 등장하고 본인의 모습도 나온다.

 

이들은 모두 나라의 금지된 행동을 행했다는 이유로 죽었고, 죽어서도 그 원한은 학교에 남아 떠돌아다닌다.

근데 왜 팡레이신만 기억을 잃고 주위를 돌아다니며 나갈 곳을 찾는 걸까?

 

 

팡레이신은 밀고자이다.

 

본인의 질투심에 못 이겨 독서회원들을 밀고하였고 자신이 좋아하던 장선생, 질투한 인선생, 본인을 좋아한 웨이충팅 모두 그 질투심에 죽어버렸다. 단독 범행은 아니다. 왜냐면 나라에서 권장했으니까

 

결국 팡레이신은 자살을 선택하고 본인이 만든 학교에 계속 잠들었다 깨어나며 본인이 택한 죄를 돌아보는

지옥을 만든 거라 보면 된다.

 

 

 

이 괴물을 나라를 위해 동료 선생을 끌고 가는 바이쿼팡 선생이라 볼 수 있을까?

그저 이 체제 자체를 괴물로 표현한 걸로 본다.

사람들은 이것을 피하고 도망가기만 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선 피하지 않고 그 괴물의 실체를 또렷이 확인하자 사라져 버렸다.

 

현실과 지옥의 차이

 

현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지옥의 괴물은 없었지만 국가의 이름으로 묵살되고 억압받았으니까

뭐가 달라진다고 살아있어야 할까?

 

하지만 웨이충팅은 살았고 세상은 달라졌다.

왜 웨이충팅은 살고자 마음을 먹었을까? 씨앗을 태워버린다면 그 씨앗은 절대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메마른 땅이라도 언젠가 피어날 때만을 기다리며 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악몽 속에서 도망만 친다면 평생 도망만 치고 그 꿈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 실체를 확인하고 살아서 버틴다면 언젠간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공포게임의 스토리와 특성을 잘 잡고 잘 만든 수작 하지만 다소 지루할수있다.

별점 ★

 

이상으로 리뷰 마칩니다.

 

반응형